올해 초 병원을 그만두고 보건소로 들어왔다.

다음 직장으로 이직 전까지 보건소에서 방문간호사로 일을 하는 중인데 방문간호사로 일을 하다보면 재미있는일이 참 많다.    

방문간호를 나가기 전에는 대상자와 꼭 방문 약속을 잡아야 한다.

대부분 어르신이기 때문에 몇일전에 약속을 잡으면 깜빡 잊어버리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로 그 날 아침에 전화를 드려서 집에 계신지 확인 후 방문을 나가곤 한다.

하지만 아침에 3시 즈음 갈께요! 하고 약속을 해도 정작 그 시간에 집 말고 경로당에 계시는 경우도 많다..ㅎㅎ

“어머니, 어디계세요! 아까 집에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하고 전화드리면

“경로당에서 공부가르쳐준다고 해서 여기있지~” 하며 사람좋게 웃으신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경로당으로 발걸음을 돌리도 하는데

그 상황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르신의 모습이 어딘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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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하는 것도 참 쉬운일이 아닌데, 시골은 봄~ 초여름시기, 혹은 가을에는 농번기라 날이 조금 좋다 싶으면 다들 일하러 나가셔서 전화가 연결이 안될때가 많다. 언제는 며느리가 받아서 “어머니 지금 밭에 나가 계세요~ 농번기라 요즘은 뵈기 어려울 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 비고란에 ‘농번기’ 라고 작게 써놓는다. 농번기가 끝나면 찾아뵐 분들이라고 내 나름대로의 표시를 해 놓는 것이다.하지만... 시골에 농번기가 아닌 때가 언제인가...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일을 하고 흐리면 날이 시원하다며 일을 하는 곳이 시골인데... 어머니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오늘도 날씨가 참 좋았다.. ㅎㅎ

더구나 요즘에는 김장철이라 다들 전화받을새도 없으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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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화 연결이 어려운 경우는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할 때인데, 아무리 또박 또박 말해도 잘 못알아 들으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이제 대화가 아니라 ‘전달’ 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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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유.”

“어머니, 안녕하세요! 보건소 방문간호사에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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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할머니의 “예???” 에서 이미 알아차렸다. 힘든 전화가 될 것이라는 걸..

몇번 전화를 하다 보면 첫 마디에서 거의 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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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건소에요!”

“뭐유?????”

“어머니, 들리세요?”

“아유 잘 안들려!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

“어머니~ 보! 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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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까지 대화하면 이제 사무실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쟤가 과연 전화상담을 잘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조용한 사무실에 내가 보!건!소! 하는 소리밖에 안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와 끝까지 대화를 못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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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늘 찾아뵈려 하는데요~”

“아 안들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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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마치려고

“그러면 다음에 찾아뵐께요 어머니. 오늘은 들어 가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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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 제 말이 안들린다고 하셨잖아요ㅠㅠ 왜 마지막 인사는 왜이렇게 잘 들으시고 상냥하게 대답을 해주시는 거에요 어머니ㅠㅠ 보! 건! 소! 보다 훨씬 긴 말이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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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화를 끊었더니 주사님들이 웃으셨다. 본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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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상자의 경우에는 그래도 듣기 위한 노력(?)을 한 케이스라면 정말 시크한(?) 대상자의 경우에는 "뭐라는거여." 하고 뚝 끊는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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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도 얼마나 답답하실까 수화기 너머로 웅얼웅얼하는 것처럼만 들릴테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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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청기를 낀 것마냥 또렷하게 들리는 전화기는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