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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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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마도를 다녀와서..
작성자 김종하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08-11-21 21:09:53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012

 지난 주말 예산지역 해설사 일행이 대마도를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대마도를 간다길래 글쎄, 대마도에 뭐 볼만한게 있을까 ?

대마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일본과의 악연을 차치하고라도 

오랬동안 괴롭혀 왔던 왜구의 본거지, 그리고 구한말 최익현선생이 유배되어

순국했던곳 쯤으로 밖에 아는게 없는지라 별 기대도 안됐지만

그래도 물건너 이국으로 가니 약간의 기대도 없진 않았다.

 

토요일 새벽 일행은 천안아산역에서 6시에 출발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부산항에 도착하니 8시반, 대마도로 가는 배는 9시 출발이었다.

출국수속을 하고 배에 올랐는데 배는 의외로 작고 안은 비좁았다.

배안은 300여명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빈틈없이 들어찼다.

 

출발한지 4 -50분이 지났을까, 전방에 멀리 섬의 외곽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대마도인가!

야릇한 호기심과 기대가 일었다.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넘자 섬이 잡힐듯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항구도시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산만 보였다.

 

그로부터 시간 반이 넘게 해안을 끼고 내려가서야 목적지인 이즈하라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12시40분경,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세시간 반이 넘게 창가에

옴짝달삭 못하게 쑤셔박혀 있던지라  몸은 종일 일한 몸처럼 무거웠다.

 

배에서 내리니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한 두방울씩 빗방울이 보였다.

입국장에 들어서 수속을 기다리는데 빗방울은  굵어지고 하늘은 잔뜩 먹구름이 덮여갔다.

비가 쉬이 물러갈것 같지 않았다. 일정이 걱정됐다.

배에 오르기전의 약간 들떠있던 마음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납작 가라 앉았다.

 

입국수속은 왜그렇게 더딘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지문을 찍고 사진기에 얼굴을 찍히고서야 끝이 났다.

이런대접을 받아가면서까지  와야했나 싶었다.

그래,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안했는가.

 

가이드가 사준 비옷을 걸치고 일행은 도보로 이즈하라 시내관광에 나섰다.

주말임에도 시내는 이상할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했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보일뿐

일인들은 별 보이지 않는다.

면적은 제주도의 반 조금 못미친다는데 인구는 고작 3만여명이라 한다.

 

먼저 수선사라는 절에 들렀다.

이곳에는 구한말 의병운동하다 이곳에 유배되어 순국한 최익현선생 추모비가 있다.

그리고 고종의 따님인 덕혜옹주의 유적, 조선통신사의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대마도는 우리와 일본과의 사이에 우체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선 세종조에 이종무 장군에 의해 무력정벌된 이래 조선에 조공을 받치던 대마도가

명치유신후 일본에 완전히 복속되기까지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최익현선생추모비

 

국분사 (조선통신사일행의 숙소로 쓰인곳)

 

이튿날, 일행은 버스를 타고 이츠하라시를 출발하여 북부 히타카츠항으로 향했다.

이츠하라는 최남단항으로 최북단인 히타카츠까지는 80여키로가 된다는데

버스로 이동하여 히타카츠항에서 부산으로 출발한단다.

 

도중에 만관교라는 곳에서 잠시 내렸다.

이곳은 일제가 일찍이 개항을 하면서 아시아를 넘볼 즈음,

남북으로 길쭉한 섬의 가장 가는 허리부분을 잘라 두개의 섬으로 만든 곳이라 한다.

물길을 내고 배를 다닐 수 있게 하였는데 완공  몇 년 후 러일 전쟁이 터졌을때

이 물길을 이용하여 저 유명한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뒤통수를 쳐

질질 끌어오던 전쟁을 일거에 승리로 이끌었다니 순간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친다.

 

만관교가 있는 반대쪽의 아소만

 

이 물길이 없었다면 아마도 발틱함대를 괴멸시키지 못했을 거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지 못하고 패했다면

아,  한일합방의 아픈역사도 없었을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너무도 안타까워 다리밑 물길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역사에 가정이란 부질없는것...

 

히타카츠항에 있는 조선 역관의 위령비 - 일본으로 향하다 바다에서 조난된

 

히타카츠항으로 오는 길은 좁디좁은 산길의 연속이었다.

가며가며 보이는 것은 비탈심한 산과 산속의 삼나무숲뿐, 논도 밭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먹을 것이 없었으니 먹을거 찾으러 노략질을 해댔구나...

섬에서 부산까지는 45키로요 일본 본토까지는 그 세배가 되는 140여키로가 된다니

그도 그럴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로부터 대마도는 우리가 먹여살린거였다.

그 연이 한동안 잠잠해 있다 다시금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에 대마도로 뱃길이 열리면서 우리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한다.

이츠하라시내 가게들의 한글간판이 어렵지 않게 보이고

한적한 시골동네에 한인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다니니 다시금 그 연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이 아니고

독도는 우리땅, 대마도도 우리땅이라 해야 안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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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명숙 2008-11-22 21:20:52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독도는 우리땅!!.대마도도 우리땅!!!......
    마쏘 마쏘...짝! 짝!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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